이오팔이네 이야기/이오팔이네 소소한 일상의 기록

‘오월이와 팔봉이, 그리고 나’ – 늙어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

이오팔이네 2025. 7.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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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와 팔봉이, 그리고 나
늙어가는 우리 가족의 아주 조용한 성장기

오월이와 팔봉이 이미지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셋이,
비슷한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엔 그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겨 잠들던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 아이들 곁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눕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늘 보살펴야 할 존재였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안정이 되어주고 있더라고요.


팔봉이 이미지화

 팔봉이, 낯가림 심한 여름 (8월)에 만난 아이
팔봉이는 진짜 고양이스러운 고양이예요.
처음 데려왔을 땐,
내가 손만 내밀어도 뒤로 숨었어요.
믿고 다가오기까지 몇 년이 걸렸죠.

하지만 지금은요,
내가 소파에 앉으면
제일 먼저 다가와 옆구리에 등을 기대요.
가끔은 고개를 내 무릎에 얹고,
여기 괜찮지? 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기도 해요.

팔봉이는
예민하고 겁 많지만,
누군가를 한번 믿으면 아주 깊게 믿는 아이예요.


오월이 이미지화

오월이, 사람을 좋아하는 하얀 발의 턱시도
오월이는 달라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인사하러 나오는 애정쟁이죠.

오월이의 특징은
나를 본다 는 거예요.
말없이 바라보는 그 눈에는
항상 뭔가 말하고 싶은 감정이 있어요.
그런 눈빛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알아, 나도 좋아해 하고 중얼거리게 돼요.

요즘은 좀 더 조용해졌어요.
낮잠 자는 시간이 늘었고,
창밖을 멍하니 보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내가 눈 마주쳐주면 야옹 하고 대답해 줘요.
그게 고마워요.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나이 드는 집사
30년 넘게 편집실에 앉아
자막 하나, 장면 하나를 다듬으며
내 시간을 살아왔어요.

그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지금은 오월이랑 팔봉이의 하루가
내 하루를 이끄는 중심이 되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두 아이가 잘 잤는지 확인하고,
밤에 잘 자라고 인사하며
불을 끄는 게 나의 마지막 루틴이에요.

나는 이제
고양이의 집사가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어요.


우리 셋은 서로를 닮아가고 있어요.
팔봉이의 예민함은 요즘 내 마음과 닮아 있어요.
작은 일에도 쉽게 피곤해지고,
혼자 있고 싶다가도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날들이 있어요.

오월이의 느릿한 움직임은 내 걸음걸이랑 비슷해졌어요.
예전엔 휙휙 움직였는데,
요즘은 서두르지 않는 하루가 더 편하더라고요.

우린 그렇게 서로 닮아가고 있어요.
늙는다는 건,
단지 주름이 생기고 털이 빠지는 일이 아니라
속도가 같아지는 것 같아요.
그게 참 위로돼요.


우리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매일매일 아이들과 함께 늙어가면서
나는 마지막 보다 지금 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사진을 남기기보단
눈빛을 오래 바라봐요.

소리를 녹음하기보단
숨소리를 기억하려 해요.

기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더 살기 위해서요.


오늘도 기록합니다
오월이가 창가에서 낮잠 자며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었고,

팔봉이는 오늘도 아침 간식 그릇을 발로 긁어댔다.

나는 오늘도, 두 아이와 함께 살아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셋이서
매일을 조금씩 늙어가고 있어요.
그게 두렵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고마워요.

이렇게 늙어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축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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